조선시대도 외모지상주의? 추녀는 벌금 미녀는 패스, 가마단속

출처 교보문고 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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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추녀는 벌금, 미녀는 패스: 가마 단속

  • 2013.05.24   
 
연말이다 연초다 하면 꼭 술 먹고 운전하는 몰상식한 인간들이 있죠? 그래서 경찰들은 새벽이고 낮이고 길거리에서 단속을 합니다. 그리고 음주측정을 하네 안 하네, 벌금을 때리네 때리지 않네, 말도 많고 말이죠. 사실 차량 관련한 단속은 음주뿐만이 아닙니다. 선탠이 짙네 짙지 않네, 혹은 매연이 많네 많지 않네 하면서 단속을 하죠. 하는 기관이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지만 아무튼 차량 관련 단속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이런 단속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마단속’이죠. 사실 가마는 아무나 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마의 종류에 따라 탈 수 있는 신분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보통 가장 낮은 신분이 말을 그대로 탑니다. 사극에서 다그닥 다그닥 말 타고 다니는 사람이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계급 상 낮은 축에 속하죠. 그리고 남자가 타는 가마와 여자가 타는 가마도 달랐습니다. 심지어 상중인 사람이 타는 가마도 따로 있었죠.
조금 더 이야기해보면 가마 탈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것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리고 명칭은 다른데 사실 거의 같은 가마인 것도 있어요. 그래도 크게 나눠보면 덮개가 있는 가마인가? 바퀴가 있는 가마인가? 장식이 화려한 가마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몇 사람이 운반하는 가마인가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의 배기량일까요? 사람이 많은 가마가 그만큼 편하고 화려한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임금님이 타는 연()이라는 가마는 왕과 그 가족이 타는 가마로, 좌우와 앞 쪽에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을 설치하고 헝겊도 길게 겹쳐 늘여놓는 등 화려해요. 거기다 왕의 가마는 20명이 메고 다니죠. 참고로 20명이 메는 가마를 일생에 한 번은 타볼 수 있는데 바로 죽을 때 ‘상여가마’에 타는 겁니다.

덩이라는 가마는 공주나 옹주들이 타던 가마인데 보통 8명이 메고 가죠. 1품 이상의 고급관리는 평교자 혹은 양교라고 불리는 것을 타는데 전후좌우 네 명이 메고 갑니다. 이건 덮개가 없는데 드라마에서 관리가 타고 “물럿거라~” 하고 외치는 장면에서 보이는 가마 있죠? 그것과 비슷해요. 사실 외형의 화려함을 제외한다면 보통 사람들도 이런 비슷한 뚜껑 없는 가마를 타죠. 하지만 1품 관리는 1품 관리인지라 여기에 수행원이 장난 아니게 붙습니다. 일산(日傘)을 드는 사람, 횃불을 드는 사람, 안롱을 드는 사람, 사롱을 드는 사람, 호상을 드는 사람 등등.
원래 여자들도 평교자를 타고 다녔는데 나중에 뚜껑 있는 가마로 바뀌는 이유가 가마꾼들이 양반 부녀자들을 메고 다니면서 슬쩍 슬쩍 희롱하고 얕잡아 보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종 때는 1,2품관의 처는 푸른색의 옥교를, 3품관의 처는 검은색 옥교를 타고 다니게 했답니다.
 
평교자를 탄 관리
그리고 초헌이라고 바퀴 하나 달린 가마가 있는데, 이것은 종2품 이상의 관리만 탑니다. 이게 실물을 보시면 굉장히 높아요. 가마꾼들이 어깨에 메고 다닐 정도죠. 그래서 위엄 있어 보이기 때문에 고위 관리만 타게 했어요. 더 아래 관리들은 사람 숫자가 적은 가마를 타게 했죠. 그래도 3품까지는 여러 사람이 붙어 한껏 뽐내는 가마를 탈 수 있었지만 그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그냥 보교를 탔습니다. 흔히 보는 그런 가마죠.
 

초헌

이 외에도 후기에 가면 말 두 마리가 끄는 쌍가마라는 놈이 나옵니다. 사람 대신 앞뒤에서 말이 끄는데, 좌우로 또 사람이 끌채를 잡아 균형을 유지합니다. 이렇게 화려한 가마다 보니 2품 이상의 승지를 지낸 이와 왕과 그 가족들만 타는데 그나마도 왕의 일가를 제외하면 도성 내에서 타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이 외에도 신주나 향로 같은 것을 싣고 다니는 신여, 책이나 보배를 나를 때 쓰는 용정자, 상주가 타는 삿갓가마, 사람 하나가 잡고 말이나 소에 가마를 얹고 다니는 독교 등등 종류는 참으로 많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가마의 종류도 많고, 탈 수 있는 신분의 제약도 많다 보니 이런 것들을 단속할 필요가 있었겠죠? 사실 법대로만 지켜준다면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잖아요. 조금 더 화려한 가마도 타고 싶고, 좀 더 편하게 많은 사람이 메는 가마도 타고 싶고 말이지요. 실제로도 두 명이나 네 명이 메야 하는 가마인데 여섯 명, 여덟 명, 심지어 열두 명까지 사람을 동원해 메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을 단속하는 관원과 몰래 타고 다니려는 사람들 사이에 실랑이도 있었겠죠.
숙종 시절에 장희빈의 어머니가 산모를 보살피기 위해 궁에 입궐했을 때 여덟 명이 메는 가마를 타고 와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걸 사헌부에서 단속해서는 가마는 압수하고 종들은 잡아다가 죄를 다스렸죠. 이거 어기면 장 80대를 칩니다. 이때 오히려 단속한 관원들이 임금의 눈 밖에 나서 두들겨 맞고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만 여기서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넘어가고, 다른 건으로 선조의 유모도 이런 옥교를 타고 입궐했다가 선조에게 혼나기도 했죠. 그런데 사실 이런 것이 정말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 등이 섞이면 분명 문제가 되지만 이전에도 이런 가마를 타거나 혹은 가마 탈 신분이 아닌데 가마 탄 일이 흔했거든요. 민간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 단속하려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걸 단속하는 관원이 자꾸 뇌물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단속에 걸리는 가마의 경우 돈이 많은 집안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은근슬쩍 몇 푼 찔러주면 단속에 통과되었죠. 그런데 이런 조그마한 죄(?)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 관원들이 점점 대범해져서 가마를 타고 다니는 아낙네의 얼굴 훔쳐보는 것까지 감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조선시대라 꽁꽁 싸매고 다니는 여성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습니다. 현대와는 의미가 다르죠.
정조4(1780) 3 18일 정언(正言) 이제만(李濟萬)이 올린 보고에 따르면 ‘여염의 젊은 아낙이 법을 무릅쓰고 가마를 타면 찾아 잡아서 감죄(勘罪)하는 것은 본디 법례가 있는데, 너울을 벗겨보고 예쁘고 못난 것을 지점(指點)하며 조례가 다그쳐서 금품을 받아내는 것이 비일비재하니, 형조 참의 이평을 파직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집에 돈 좀 있는 젊은 아낙이 화려한 가마를 타고 다니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신분이 맞지 않으면 이건 엄연히 불법이라 비리관원들은 이걸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가마의 발을 벗겨 그 안에 있는 여인을 보고는 얼굴이 못났으면 돈을 받고, 예쁘면 봐준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관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형조참의에게 죄를 물어 이런 놈들을 잘라버리라는 상소문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제각각 욕심을 가지고 있고, 또 사람이 있는 곳에는 법이 있고, 그런 곳에는 또 비리가 있는 곳도 있고. 거 참,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삶이란 별반 다를 것 없는 요지경입니다.
 

by 블루아이즈 | 2013/05/24 16:56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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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병규 at 2013/06/05 21:53
ㅋㅋ가마도 컨버터블잇엇네
Commented by 방랑자999 at 2013/10/17 05:11
사실 오래전부터 외모지샂주의는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옛날에는 미디어가 지금처럼 발달이 되있지 않아서 잘 몰랐을 뿐이지요. 현대는 티비나 인터넷 같은 미디어 덕분에 가속화 되었고 일반화 되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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